‘시간의 조형화’
시간과 공간의 이동을 통한 복원과 유추의 조각개념
조각가 임승오가 주목한 것은 이와는 별개의 시간과 공간의 개념이다. 보이지 않는 과거의 시간과 미래의 시간을 조형화하는 작업이 그의 작품방향이다.
시간이 켜켜이 쌓여 비바람을 맞고 굳어지면서 그 위에 또 다른 시간의 흔적이 쌓이는 그런 모습을 말이다. 즉, 이는 상상력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시공간으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어느정도의 팩트가 존재하는 것이 조형성을 더욱 단단하게 만드는 근거가 된다.
<시간의 그릇>시리즈에선 정확한 측정보다 상징적 의미가 더 중요한 그런 시간을 다루고 있는 것이라고 미술평론가 최태만은 말했다. 또한 임승오의 <시간의 그릇>은 마술이나 연금술의 맥락에서 시간을 신비화시키려 한 결과가 아니라 자연현상에 내맡겨진 시간의 추이를 상상하려는 시간여행에의 출구라고 평하기도 했다.
이 외에도 ‘드러난 시간의 궤적’이나 ‘시간비행’, ‘시간의 차연’ 등의 작품은 고고학적인 발굴의 모습을 재현함으로써 그 시대에 생활상이나 인간상, 그리고 풍토를 예측해 미래에 대입시키는 과거와 미래의 유사성을 표현하고 있다.
이로써 현대문명의 여러 폐기물이 미래에는 이 시대를 유추할 수 있는 유물이 될 수 있음을 시사하고, 또한 지금 우리가 무심코 버리는 모든 것들이 시간의 퇴적에 의해 유적이 될 수 있으며, 한 시대를 증언하는 자료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이는 그저 ‘과거의 표현, 미래의 추측’의 측면을 넘어서, 과거를 복원해 미래를 예측하는 만큼, 미래에 현재 우리의 현대문명을 복원함으로써 인간이 자연을 대했던 무지함을 추측할 수도 있다는 뜻을 내포하기도 한다.
“왜 시간에 주목했는가?”에 대한 질문에 조각가 임승오는 “작업초기 흙작업을 통해 흙의 쌓임에 관심을 갖게 됐고, 흙의 쌓임은 곧 시간의 쌓임과 일치하기 때문”이라며 지금도 우리가 모르는 과거가 우리 발밑에 굳게 쌓여있는 흙에 새겨져 있다며, 보이지 않는 시간과 공간의 가시화가 예술가로써 자신의 몫이라는 뜻을 전했다.
보이지 않는 과거에 대한 고고학적 상상력을 미래로까지 연장하는 가시적 예술품, 그것이 바로 임승오가 추구하는 조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