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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며 마치 되새김질하는 초식동물처럼 유년시절의 추억을 되돌아보다가, 문득 나의 삶의 원천이 소년시절 자라면서 화인火印처럼 새겨진 자연환 경에 대한 그리움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결국 나의 그림을 찾는다는 것은 나의 영혼을 울리는 그 유산들로부터 나만의 것을 그림을 통해 증류해서 표현하는 것임을 깨달았다. 그동안 전통채색화의 재료와 온갖 기법 그리고 벽화 모사 등을 배우고 익히며 여러 가지 실험을 해나가던과정에서 찾아낸 출구가 ‘진경산수화’였으며 그것은 곧 우리의 산하를 전통 채색으로 그리는 ‘청록산수’였다. 당시 많은 동료작가들이 옛 것을 그대로 답습하거나 서양화법을 끌어 들여 무분별한 절충을 해 나갈 때 나는우리 한국화의 정체성의회복이라는 과제를 풀어내야겠다는 신념을 키웠다. 가장 우리적인 옛 그림들 조선후기 진경산수화 시대를 열었던 겸재 정선, 가장 조선적인 화가라는 평을 듣게 된 단원 김홍도로부터 근대의 여러 대가들까지 철저하게 공부하였으며, 그 결과를 나의 작품에서 재현해 나갔다. 그 과정의 출발은 산과 계곡이 깊어 부감할 수 있는 강원도 산간지역(영월, 정선, 평창) 일대를 그리는 것이었고, 그 뒤를 이어서 비교적 평평한 평야와 얕은 산이 어우러진 남도지방, 제주도 연작까지 이어졌다. 이윽고 나는 그 재현 과정의 마무리로서, 내가 이주해서 살고 있고 나의 삶의 터전인 ‘서울’을 주제로 실경연작에 이르렀고, 서울의 진산들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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