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영의 근작시리즈 - 포옹(Embrace)
샤롯 홀릭
(큐레이터ㆍ런던 빅토리아 앤드 알버트 박물관)
Charlotte Horlyck
(Art CuratorㆍVictoria and Albert Museum)
이 전시회는 작가 최재영이 가장 아끼는 주제인 ‘사람들’에 관한 그의 근작들을 중심으로 마련되었다. 인간의 형태에 대한 날카로운 관찰자로서, 그는 남자와 여자의 이미지를 결합하여 서로 다른 장소와 색채들로 구성된 배경에 ‘포옹’을 병치시켰다. 영국뿐만 아니라 미국에서도 활발한 전시회를 가졌지만, ‘포옹’은 그가 ‘인간’이란 주제로 그의 고향인 광주에서 마지막으로 전시회를 가졌던 1993년 이후 한국에서의 첫 번째 전시회가 될 것이다. 이처럼, 최재영의 한국관객은 그가 영국에 체류하는 동안 많은 발전을 거두었음을 보여주는 그의 작품과 다시 만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지난 5~6년간 런던 남쪽의 뉴몰든에서 거주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최재영은 한국인으로서의 뿌리를 잃지 않고, 그의 향토적 배경과 새로운 체류지의 배경을 성공적으로 융합시켜나갔다.
1998년 ‘얼굴’이라는 개인전에서 최재영은 그가 한국을 떠난 이래 일부가 되었던 세계를 보여주었다. 친구, 지인(知人) 그리고 그의 이웃 사람들의 그림으로, 그는 자신의 삶 가운데 즐겁고 감동적인 장면들을 기교 있게 묘사하였다. 관객들에게는 그림 속의 얼굴들이 무명이지만 예술가에게는 그들 각자가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러나, 이들 그림 속에서 우리는 우리자신의 이웃을 인지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것은 사람들의 유사한 구성-즉 젊은이, 노인, 우리가 알고 있는 사람들 그리고, 영원히 무명으로 남게될 사람들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의 작품들을 통해 최재영은, 비록 우리가 서로 다른 장소에 살고 있다 할지라도, 우리의 삶은 궁극적으로 우리를 둘러싼 사람들, 우리의 감정과 같은 동일한 내용들로 형성된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다. 상황이나 장소가 관련된 문제들을 다룸으로써, 이제 최재영은 고립과 일체감의 감정을 전달하기 위해 계속 앞으로 나아간다.
최근에 인간이라는 주제를 반영함에 있어 최재영은 갈망, 사랑, 고독 그리고 좌절의 감정들은 보편적인 것이지 문화적 구속을 받는 것이 아님을 증명한다. 수많은 서로 다른 상황에서 다양한 국적을 가진 남성과 여성을 포개 놓으며, 그는 인간의 감정이 지리적(地理的) 장소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 스스로에 의해 형성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때때로, 런던의 건물과 광장이 배경을 형성하지만, 또 다른 때에는, 원래 김홍도에 의해 그려진 연주자의 무리가 그림의 전경에서 포옹하는 인물들을 에워싸고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실제로 최재영의 ‘스크래치’ 이미지 시리즈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실행의 장면은 장황(張皇)해지고, 그의 작품에서 두 개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는 형태와 질감은 우선하여 배경은 사실상 까맣게 지워져버린다.
현재 최재영의 ‘스크래치 페인팅’ 제작은 최근 작품의 중요한 일부를 구성한다. 조각에서 강한 영향을 받아, 그는 여기에서 3차원의 감각(느낌)을 2차원적인 평면으로 재현하고자 하였다.
드로잉의 과정을 통해 그는 양각 직감을 구성하기 위해 종이의 표면을 벗겨낸다. 모든 유형의 종이가 이것에 적합한 것은 아니며, 그러한 기술을 완성한다는 것은 성가스러운 과정이었지만, 그 결과는 분명히 보람이 있었다. 최재영은 그림에서 조각적 형태를 자아내는데 성공하였을 뿐만 아니라, 또한 우연히도 에칭이나 목판화와 같은 환각(幻覺)을 형성하였다. 이러한 그림들이 단순히 종이와 먹으로 구성된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서 하나의 위업이다.
대부분의 작품들이 미묘한 톤으로 제작되지만 색채가 최재영의 작품에서 한가지 중요한 요소를 차지한다. 그는 동일한 구성요소들을 시리즈로 나열하였지만 서로 다른 색채로 재현된 배경을 통해 같은 그림 속에서 서로 다른 정서를 표현한다. 칠흑 같은 하늘에 대비한 녹색과 자줏빛의 거리와 건물은 어둡고 우울한 감정을 주며 빨강, 노랑 그리고 테라코타의 보다 밝은 톤으로 채색된 동일한 배경과 적나라한 대조를 이루고 있다. 몇몇 작품들은, 밝은 빨강, 노랑 그리고 파랑색같은 대담한 원색들을 보여주는데, 이는 분명히 그의 조국에 대한 작가의 경의를 뜻하는 것이다. 또한 최재영은 서로 다른 테크닉을 빈번하게 사용하며, 위에 언급된 ‘Scratchings on paper’ 스크린 페인팅과 아크릴을 응용해서 사용하고 있다. 많은 작품들이 이러한 절차들을 통해 의식적으로 이루어진 혼용(융합)을 보여준다. 그렇게 함에 있어서 작가는 차이점에 대한 그들 나름의 독특한 특성에 찬사를 보내며, 그들이 어떻게 쉽게 결합될 수 있는가를 보여준다. 같은 방법으로, 최재영이 서로 다른 국적의 사람들을 찬찬히 묘사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포옹으로 그들을 결합하고, 결국 이것은 문화적 경계를 넘어서게 된다.
무엇이 인간의 감정과 형태에 대한 이러한 관심을 도발하였는가를 의아해하며, 우리는 작가의 조국에서의 정치적 상황이 그의 작품의 중요한 촉매였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이에 작가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의 그림에서 나는 두 가지 형태의 포옹을 다룬다. 즉 하나는 모든 사람들의 보편적인 갈망에 대한 포옹이고, 다른 하나는 현재 한반도 분단에 의해 초래된 한국의 많은 이산가족들의 좌절을 나타내는 포옹이다.” 전시회의 많은 작품들이 시리즈 형태로 되어 있으며, 서로 다른 다양한 배경과 색채 범위에서 유사한 인간의 형태를 보여주고 있는 것은 주목할 만한 일이다. 이것이 인간의 감정은 지리적 상황에 관계없이 동일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으며, 또한, 어떤 이야기가 전해질 수 있도록 한다. 즉 최재영의 눈을 통해 전달되는 친구와 이방인 사람들의 이야기. 그러나, 각각의 이야기의 정확한 내용을 상상하는 것은 관객에게 달려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