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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들빛 : 그림자를 마주한 시선

들빛 455(w)×530(h)mm Mixed Media 2024

‘들빛’은 들에 핀 들꽃의 그림자가 만들어 내는 빛을 뜻합니다.

 “빛에 의해 드러난 생명”을 말하고자 합니다.

어린 시절 교회 주일학교에서부터 청년 시절 칸트의 철학에 이르기까지, 나는 언제나 ‘땅을 딛고 살아간다’는 존재의 물음을 품어 왔습니다.

그 여정 속에서 생명에 대해 깊이 고민했고, 때론 두려움에 갇히기도 했으며, 때론 겸허하게, 숭고하게 받아들이며 해결되지 않는 수수께끼 같은 질문들과 함께 살아왔습니다.


어느 날, 우연히 바람에 흔들리는 마른 들풀을 보게 되었습니다.

분명히 생명을 다하고 죽어 있는 들풀이었지만, 그 흔들림 속에서 나는 또 다른 생명을 느꼈습니다.

빛을 받은 들풀은 하얀 회벽에 그림자를 드리우며 마치 춤을 추듯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그 움직임은 마치 “나는 아직 살아 있어!”라고 말하며, 나에게 생존의 신호를 보내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그 순간, 나는 흔들리는 들풀을 통해 ‘들빛’을 보게 된 것입니다.


그 장면은 죽음 이후에도 여전히 살아 있는 생명성,

곧 ‘관계 안에서 지속되는 존재’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졌고,

이후 나의 작업에 있어 지속적인 동기가 되었습니다.


말하자면, 이것은 단지 하나의 작품이 아닙니다.

존재를 향한 하나의 응답이며,

사라진 존재와의 관계를 회복하려는 예술적 윤리입니다.


나의 작품은 죽은 것이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살아 있는 것들을 위한 기도입니다.

그림자는 바로 그런 존재이며,

나의 회화는 그 그림자 앞에 선 우리의 시선을 바꾸는 것입니다.


‘들빛’은 들에 핀 들꽃의 그림자가 만들어 내는 빛을 뜻합니다.

곧, “빛에 의해 드러난 생명”을 말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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