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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조풍류

Poongryu CHO

조풍류,
한국 채색화의 빛나는 여정


김석
(KBS 기자, 문화재위원회 전문위원)

혹적인 블루였다. 높고 깊고 어두운 산과 하늘이 온통 푸른 공기로 뒤덮이는 밤. 소란스러웠던 세상은 그 어둠 속에서 짙푸른 담청(淡靑)에 끝도 없이 젖어 들었다. 화폭에 물든 인왕산의 푸른 밤은 강렬했다. 모든 걸 집어삼키는 도시의 어둠에서 화가는 어찌 저리도 아련하고 깊은 푸른빛을 끄집어냈을까. 하늘에서 땅까지, 황혼에서 새벽까지, 시간과 공간의 경계를 모두 지워버린 그림 앞에서 넋을 잃었다. 그 경이로운 푸른빛에 감동한 어떤 이는 화가의 이름을 따 ‘풍류 블루’라 하지 않았던가.

가를 가까이서 가장 오래 지켜본 미술기자라는 점 때문에 전시 서문을 부탁받았다. 첫 만남의 시간으로 거슬러 올라가 기억을 더듬는다. 한때 파랑이라는 색채에 강하게 이끌려 파란색 그림만 정신없이 찾아 헤맨 적이 있다. 그걸 아는 지인이 어느 날 사진 하나를 보내왔다. 조풍류라는 화가를 아세요? 처음 듣는 이름이었고, 그 뒤로 까맣게 잊고 있었다. 몇 달이 흐른 어느 날, 책상 위에 쌓인 보도 자료를 정리하다 눈이 멈췄다. 조풍류. 순간 희미한 기억 속에서 이름 석 자가 떠올랐다. 마음이 급해졌다. 전시가 끝나가고 있었으므로.

사동에서 화가를 처음 만난 2015년 12월의 그 날은 공교롭게도 전시 마지막 날. 화가가 제주에 잠시 머물던 시절이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비행기 표를 취소했다며 환하게 웃는 얼굴을 보니 더 미안해졌다. 지금 생각하면 그 만남은 운명이었던 것 같다. 한 덩어리처럼 보이는 파랑 속에서 무수한 색의 변화가 물결치고 있었다. 산 아래로 점점이 불을 밝힌 인왕산 어귀 마을이 마치 반딧불처럼 깜빡이는 아련한 풍경. 못 만났다면 어쩔 뻔했는가. 화가의 그림과 얼굴이 뉴스 화면에 등장했고, 덕분에 전시 기간도 며칠 더 연장됐다.

고로 그림 앞에 서야 한다는, 누군가를 대면하듯 그림과 마주 보고 눈을 맞춰야 한다는 지극히 당연한 진리를 조풍류의 그림은 새삼 일깨웠다. 보는 이의 시선을 단박에 빼앗는 그 강렬한 에너지는 일차적으로는 화가가 풀어놓은 색채에서 비롯된다. 하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다. ‘풍류 블루’에는 다른 화가들에게선 찾기 힘든 남다른 화면의 깊이가 녹아 있다. 그 깊이를 만들어내는 건 바로 ‘질감’이다. 그 오롯한 질감이야말로 조풍류의 예술을 독보적인 세계에 위치시키는 힘이다.

개껍질과 돌을 곱게 갈아 만든 가루를 아교에 개어 화면에 얹고 또 얹는다. 원하는 질감을 얻을 때까지 이 공정을 끊임없이 반복한다. 어떤 이가 ‘벽화기법’이라 이름 붙인 까다로운 노동집약적 작업을 거쳐 비로소 남다른 화면의 깊이가 만들어진다. 화가의 말대로 그림의 피부는 농사꾼의 손등처럼 거칠고 투박하다. 도대체 얼마나 깊이 고민했을까. 얼마나 많은 붓질이 필요했는가. 미술 세계의 언저리를 기웃거리면서 어쭙잖은 잡문으로 밥벌이하며 사는 나는 그 간단치 않은 과정이 주는 무게와 번민을 쉽사리 가늠하지 못한다.

기가 왜 없었겠는가. 나는 누구인가. 나는 왜 그림을 그리는가. 예술은 대체 내게 무슨 의미인가. 이런 고민을 끌어안고 방황했다. 산으로 들로 정처 없이 떠돌았다. 그러던 그에게 손 내밀어준 건 다름 아닌 고향이었다. 화가는 남도 끝자락 목포에서 태어나 유달산 기슭에서 놀며 자랐다. 남종화의 대가이자 호남화파의 거목이었던 남농 허건(許楗, 1907~1987)의 자취가 서린 고향 목포에서 화가는 비로소 깨달았다. 자기 삶의 원천은 어린 시절부터 자연스럽게 체득한 자연환경에 대한 그리움이라는 것을. 화가로 산다는 것은 영혼을 흔드는 그 유산들로부터 나만의 것을 거르고 걸러 화폭에 표현해내는 일임을. 숱한 실험과 도전을 통해 화가가 마련한 출구는 바로 ‘진경산수’였다.

금은 맥이 끊겨버린 전통 청록산수화 채색 기법을 화가가 끊임없이 연구하고 발전시켜온 까닭은 자명하다. 우리 한국화의 정체성 회복이란 과제를 풀어내야겠다는 굳은 신념 때문이다. 겸재와 단원부터 근대 작품까지 철저하게 뿌리와 기초를 다지는 공부를 통해 자기만의 그림을 그려나갔다. 그렇게 강원 산간을 시작으로 남도, 제주 연작이 차례로 탄생했다. 그리고 화가가 그 여정의 종착역으로 삼은 곳은 바로 서울이다. 서울의 진산들과 궁궐, 종묘, 도성길을 걸으면서 화가는 결심했다. 서울의 정체성과 우리 문화의 원류를 찾는 여행을 떠나보자고.

풍류는 우리 시대의 ‘인왕산 화가’다. 화가를 아는 이라면 조풍류의 출세작이자 대표작으로 인왕산 연작을 꼽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한 번은 왜 인왕산을 그리느냐고 물은 적이 있다. 화가는 먼 기억에서 유달산을 꺼냈다. 인왕산을 볼 때마다 어린 시절 친구들과 지치는 줄도 모르고 뛰놀던 유달산이 겹쳐 보였노라고. 그래서 인왕산에 더 천착하게 됐다고 말이다. 화가의 바람은 소박하다. 속도가 지배하는 무한경쟁의 시대에 상처받고 지친 이들의 몸과 마음을 어루만져주고 싶단다. 그래서일까. 조풍류의 그림에선 따뜻함이 느껴진다.

뚱한 얘기처럼 들릴지 몰라도 화가 조풍류와 인간 조풍류는 참 다르구나, 하는 생각을 꽤 오래 했다. 말과 표정에서 느껴지는 어린아이 같은 천진난만함이 그림과는 딴판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저 장난기 어린 사람에게서 어떻게 저런 그림이 나올 수 있는 거지? 하지만 화가를 알아온 4년이란 시간이 답을 일러줬다. 화가 조풍류와 인간 조풍류는 결국 같은 사람일 수밖에 없음을. 내가 아는 조풍류는 그림 아닌 다른 무엇으로 미술 권력에 다가가지 않고 한결같이 자기 예술에 충실한 ‘천생 화가’다. 유행과 세태에 휩쓸리지 않고 묵묵히 자기만의 길을 걸어온 화가에게서 나는 미술책이 가르쳐주지 않는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배웠다.

을 쓰기 위해 그림들을 하나하나 다시 보면서 조풍류가 얼마나 멋진 화가인지 새삼 깨닫는다. 그림에 문외한인 내게 조풍류의 그림은 한 줄기 빛이었다. 그의 그림은 도시의 밤이 뿜어내는 빛이 얼마나 눈이 부신지, 이 땅의 하늘과 산천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감동적으로 보여주었다. 그의 그림에서 나는 좋은 예술이 강력한 치유의 힘을 지녔음을 누구보다도 많이, 그리고 깊이 체험했다. 그러므로 이번 전시는 화가 조풍류의 진가를 제대로 확인하는 다시 없는 자리가 될 것이다. 보라. 그림밖에 모르는 화가의 정직한 붓은 절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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