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적 기제로서 꼬마인형의 파란 눈과 비현실적 시선
심상용 (미술사학 박사, 미술평론)
최재영의 작품세계는 오랫동안 다양한 방식으로 인간에 대한 담화에 관여해 왔다. 인간들 사이의 관계와 소통은 작가에게 특별히 중요한 주제였다. 이전에 그의 회화는 보다 직접적인 방식으로 이 문제를 다루어 왔다. 인간들은 서로의 얼굴을 감싸고, 만지고 애무하고 속삭이면서 캔버스를 가득 메우곤 했다. 그들의 시선에는 서로에 대한 갈망이나 집착이, 어떤 충족되길 고대하는 결핍의 뉘앙스로 조율되면서 담겨 있었다. 그와 (거의) 동일한 성격의 시선이 이번에는 꼬마 인형들의 비현실적인 그것을 통해 우리에게 다가온다.
꼬마인형들은 우회적으로 사람들의 욕망과 상실, 실존과 일상과 안에서 지속되는 그리움과 관계의 이야기들을 대변한다. 어린 시절, 서양 아이의 것에 가까운 커다란 파란 눈을 깜빡거리던 금발의 꼬마인형 하나 가져보지 않았던 사람은 드물 것이다. 까맣게 손 떼가 밸 때까지 만지작거리는 동안 유년기 꿈의 한 가닥에 분명 녹아들었을 그 얼굴과 표정은, 그래서 익숙하면서도 낯설고, 친근한 듯하면서도 어느덧 어색해진, 과거와 현재가 모호하게 간섭하는 지점에서 우리의 감관을 향해 말을 걸어온다.
최재영은 바로 그 얼굴과 표정에서 현실과 비현실을 넘나들고, 과거와 현실을 왕래하면서, 그리고 밀착과 유격 사이를 오가면서, 이 시대 문명과 삶을 다양하게 조망하는 미적 잠재성을 포착한다. 최재영 회화의 밀도와 긴장감을 조율해내는 중요한 것이 바로 그 표정, 그리고 특히 그 비현실적으로 동그랗고 확대된 파란 동공과 그것에 담긴 시선이다. 시선의 이 비현실성은 현실과의 관계에서 어떤 유격을 허용하는 미학적 기제로서, 그것을 통해 사람들은 오히려 자신이 속해 있는 실존의 리얼리티를 차갑게 관조하도록 인도될 수 있다. 즉, 꼬마인형의 시선은 그 형태적인 비현실성과는 다르게, 욕망으로 반짝이고, 울고, 응시하는 실존의 상황들을 경유해나가고 있는 것이다. 작가를 따르면, 그 시선은 ‘사이보그적’이지만, 그것에 담겨 있는 것들은 실존적 차원의 것들이다.
“인형의 눈을 통해 투영된 우리의 모습들은 … 나와의 교감을 통하여 재구성되고 또 다른 경험을 통하여 표출된다. 인형의 눈동자는 사이보그 적이지만 친근하며, 때론 냉소적인 시각으로 인간의 욕망과 위선을 조롱한다.”
그들의 표정과 시선은 인형의 무표정에 의해 간섭되고 억제되면서 중성적이고 모호한 것이 된다. 하지만 그 모호한 무표정, 감성의 중성은 어느덧 흥미롭게도 점점 더 위협받고 있는 인간성, 반짝거리는 것들의 이면에서 더욱 메마르고 결핍되어가는 감각에 대한 보고서가 된다. 꼬마인형의 그 사이보그적인 영롱함, 윤기가 흐르는 파스텔 톤의 피부야말로 이미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무덤덤하고 건조한 것이 되어버린 이 시대상의 고밀도로 함축한 케리커쳐인 것이다.
최재영의 회화에선 바로 이 비현실적인 현실의 대변자들이 다양한 삶의 순간들을 되짚어 나가고 관계의 방정식을 확인해 나간다. 우리의 일상적 꿈이 되어 있는 것들, 코카콜라와 맥도널드와 버거킹 간판이 즐비한 도심지의 거리를 배회하는 것도 그 꼬마들이다. 사랑에 눈물 흘리는 연인이나 넥타이를 푼 채 달려 나가는 샐러리맨들의 초상화도 그들에게 투영된다.
최재영의 회화를 주조하는 색조는 꼬마인형만큼이나 부드럽고 달콤하며 인위적이다. 자주 핑크 계열이 중심을 이루며, 차가운 색채들조차 전혀 한기가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그 톤이 완화되어 있다. 원색이 사용되는 경우는 거의 없으며, 화면의 그 어느 요인도 유년기의 꿈의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이 세계가 제안하는 담화는 어른의 세계가 쉽게 그것에 의해 오염되곤 하는 것처럼, 강변이나 설득의 유혹에 이끌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안에는 분명 이 시대의 문명을 바라보는 문제의식의 산물들이 포함되어 있지만, 그것들이 선동되거나 (마치 유일한 해결책이라도 되는 양) 선포되는 일은 없다. 상황은 위협적이지 않으며, 꼬마인형들은 실제의 아이들이 그런 것처럼 자신의 놀이에 충실할 뿐이다. 만일 이 텍스트들로부터 그 이상의 의미를 건져 올리는 것이 필요하다면, 그 몫은 전적으로 보는 이의 것일 뿐이다. 이것이 유년기의 꿈과 그 세계의 대사(大使)인 꼬마인형들로 이루어진 최재영 회화의 또 다른 미덕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