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가의 글 ‘도순연가’에 부치는 말  그날은 시간이 빠듯하여 쫓기는 걸음이었는데 이상하리만치 선명하게 발 밑의 작은 풀잎이 내 발목을 잡았다. 이름도 알길 없는 손톱만한 풀이파리가 그렁거리는 구멍을 담고 내게 말했다. “당신은 하마터면 나를 밟을 뻔했어요. 그러니 날 데려가 내 삶을 노래해줘요.” 서울과 서울언저리의 삶을 접고서 제주로 내려온 나를 반겨준 것은, 모든 걸 쓰러트릴 기세로 불어대는 겨울바람이었다. 거센 바람 앞에 아무 것도 이해하고 싶지 않은 듯 무심하게 서있는 담벼락이 있었다. 그 담벼락을 쓸어내리며 슬픈 노래를 짓는 메마른 넝쿨을 보았다. 무리에서 뜯겨져 담벼락에 붙은 채 서서히 말라 죽어간 넝쿨, 죽은 채로도 오랫동안 비바람을 견뎌낸 넝쿨. 죽은 줄 알았는데 때로는 새잎을 피워대기도 하는 넝쿨.  내 안의 울음들과 음표가 되었던 구멍 난 잎들이 넝쿨의 선율을 따라 노래를 한다. 지치고 고단한 삶에 노래만한 위로가 어디 있을까. 이렇게 시작된 ‘도순연가’작업은 집 담벼락에서, 쓰레기를 버리러 가는 길 근처의 낡은 건물 벽으로도 이어졌다. (도순은 동네이름이다) 쏟아지는 눈물들 흠뻑 맞으며 쑥쑥 자라는 삶이 있다. 나를 키워 낸 것도 다름 아닌 눈물이었으니 < 갤러리 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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