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rtist Note 한국어
For me, there is nothing new about my work. Yet, neither do I have any notion about the old. The newness, as far as my work is concerned, has nothing to do with the time that is flowing only in one direction. Nothing can be expected of my work that relates to such a linear flow of time. My work, invariably, is something that is simultaneous or something that flows backward, which can be said to be anachronistic. The motif I worked on in my 20s, for example, reappears from time to time in my 40s. It is as if the water flows and permeates through the soil, and again comes out nowhere and spreads out. And then, what interests me disappears even before I notice it, as if waking from a dream. Just like wandering around the multilayered, horizontal flow of time. This is why my work can not premeditated, and not composed of what is clear alone. Clearness seems attractive to me, and then, it becomes ambiguous and this ambiguity makes me confused, overwhelming all the planning and anticipations I had until then. Sometimes, ambiguity follows behind me and some other times, it goes ahead of me. Therefore, clearness and ambiguity do not conflict with each other, but, on the contrary, interact with each other, ultimately leading to a creation of metamorphosis just like the clouds. This makes it difficult to talk about maturity of my work in terms of time. I even go so far as to try to delay the conclusion indefinitely through distortion and repetition that deviate from the shortest distance between beginning and ending (efficiency of cause and effect). As if being half awake and half sleep--my life probably affects my dream, yet, my dream also seems to affect my life. Life will go on withthoughts inside, but also, thoughts have life inside.

English

나의 작업은 나에게 새삼 새로울 것이 없다. 그렇다고 낡음에 대한 관념도 없다. 나의 작업에서 새로움이란, 종적인 시간 선상 위에서 운용되는 그런 것은 아니다. 나의 작업에서 한 방향의 단선-직선적 시간으로 흘러가는 추이는 예상할 수 없다. 나의 작업은 언제나 동시 병발적 이거나 퇴행적이기도 하여 마치 시대착오적이라 할 생리를 갖고 있는 셈이다. 이를테면, 20대에 하던 작업의 모티프가 40대에 와서도 틈틈이 수평적인 흐름을 타고 솟아난다. 물이 흐르다 대지에 스며드는가 하면 어딘가에서 다시 배어 나오듯 그렇게 나타나며 교차되어 퍼져나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때까지의 관심이 어느덧 나도 모른 새 다시 종적을 감춘다. 꿈을 꾸다 깨어나듯. 다층적, 복선적, 횡적 흐름의 시간 속에서의 배회라고나 할까. 이렇다 보니 나의 작업은 따지고 계획되고, 그렇게 어떤 명확한 개념으로만 꾸며지는 것이 아니다. 명료한 개념에 이끌리는가 싶으나 어쩌다보면 모호(ambiguity)해지고 그래서 그런 모호함은 더욱 나를 방황케 하면서 그때까지 갖고 있던 어떤 계획과 예측을 뛰어넘는다. 모호함은 나보다 늦게 나오든가 또는 먼저 앞서가기도 한다. 따라서 명료함과 모호함은 서로 충돌/ 대립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서로를 역동적으로 이끌면서 하늘의 구름처럼 생성되고 변모(metamorphosis)를 창출하는 것이다. 이래서 내 작업을 두고 시간상의 성숙을 논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시작과 결과 사이의 최단거리(인과적 효율성)를 이탈하고 빗나가는 왜곡과 반복으로 결론을 무한히 지연시키는 무모함을 불사한다. 비몽사몽 -- 내 삶이 꿈을 잉태하기도 하겠지만, 내 꿈이 내 삶을 잉태하는 것이기도 하다. 삶이 생각을 품고 나아가겠지만 생각이 삶을 품고 있기도 한 것 아닌가.
<
myungseopho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