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rtist note 나는 왜 서울산수와 종묘를 그렸는가.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 다양한 소재를 그리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해바라기, 옥수수를 그리기도 했고, 일본 나라에 있는 호류지의 금당벽화를 모사하기도 했습니다. 해바라기 그림은 정밀하다고 칭찬을 들었고 금당벽화를 본 사람들은 완전한 모사라며 놀라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몇 년이 지나고, 나는 큰 위기에 부딪쳤습니다. 자신의 예술에 대한 회의였습니다. 나는 왜 그림을 그리는가? 예술이 도대체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그리고, 나는 누구인가? 정체성에 관한 이런 고민들이 깊어질수록 화가로서, 동시에 한 존재로서 한계를 느꼈고, 쉽게 넘을 수 없는 한계임을 안 나는 한동안 방황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다 내가 나고 자란 고향 목포를 찾아 유년시절 뛰어 놀던 유달산에 오른 적이 있었습니다. 유달산에서, 다도해의 섬들을 바라보며 마치 되새김질하는 초식동물처럼 유년시절의 추억을 되돌아보다가, 문득 나의 삶의 원천이 소년시절 자라면서 화인(火印)처럼 새겨진 자연환경에 대한 그리움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결국 나의 그림을 찾는다는 것은 나의 영혼을 울리는 그 유산들로부터 나만의 것을 그림을 통해 증류해서 표현하는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그동안 전통채색화의 재료와 온갖 기법 그리고 벽화 모사등을 배우고 익히며 여러 가지 실험을 해나가던 과정에서 찾아낸 출구가 진경산수화였으며 그것은 곧 우리의 산하를 전통 채색으로 그리는 청록산수였습니다. 당시 많은 동료작가들이 옛 것을 그대로 답습하거나 서양화법을 끌어 들여 무분별한 절충을 해 나갈 때 나는 우리 한국화의 정체성의 회복이라는 과제를 풀어내야겠다는 신념을 키웠습니다. 가장 우리적인 옛 그림들 조선후기 진경산수화 시대를 열었던 겸재 정선, 가장 조선적인 화가라는 평을 듣게 된 단원 김홍도로부터 근대의 여러 대가들까지 철저하게 공부하여, 그 결과를 나의 작품에서 재현해 나갔습니다. 그 과정의 출발은 산과 계곡이 깊어 부감할 수 있는 강원도 산간지역(영월, 정선, 평창) 일대를 그리는 것이었고, 그 뒤를 이어서 비교적 평평한 평야와 얕은 산이 어우러진 남도지방, 제주도 연작까지 이어졌습니다. 이윽고 나는 그 재현 과정의 마무리로서, 내가 이주해서 살고 있고 나의 삶의 터전인 서울을 주제로 실경연작에 이르렀고, 서울의 진산들과 궁궐, 종묘, 도성길을 걸으며 서울의 정체성과 의미를 생각하는 것에서 나아가 우리 민족문화의 원류를 찾는 사유로 이어가게 되었습니다. 처음부터 계획하고 이 길을 떠난 것은 아니었습니다. 나는 누구이며 나는 왜 그림을 그리는가? 라는 의문에서 시작된 여행길에 여러 가지를 배우고 경험하며 다음에서 다음으로 발길을 이어가게 된 것입니다. 600년 역사속에서 산과 물이 어우러진 서울의 빼어난 경관은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고 서울에 사는 사람들은 시간과 함께 바뀌어 가지만 서울의 문화와 예술을 그대로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오랜 역사가 켜켜이 쌓여 있는 서울은 나에게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웅대한 로망(Roman)이었습니다. 10여년 서울의 옛 자취를 더듬어 가며 작업하는 사이에 나는 서울 고유의 색감에 눈을 뜨게 되었고 그 색은 ‘풍류블루’라는 별칭도 얻었습니다. 하얀 캔버스위의 점에서 시작한 여정이 선으로, 선에서 푸른 공간으로 연결되어 갔습니다. 1741~1759년 겸재 정선이 한양진경을 그렸던 《경교명승첩》에서 2020년까지 260여 년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2020년 겸재정선 미술관 “서울실경“ 초대전은 10여년 작업했던 서울 산수작업을 한번 정리하는 전시가 될 것입니다. 국적불명의 초고층 빌딩들로 숲을 이룬 오늘날에는 동양화의 옛 그림 속 산수풍경 같은 서울의 원래 모습들은 찾아보기 어렵지만 화강암의 웅장한 산세와 여러 갈래의 물줄기와 어우러진 자연과 더불어 지어진 옛 건축물과 조경은 그대로 살아 있습니다. 서울 사람들의 삶과 문화 그걸 담는 그릇으로 도성, 도시건축물, 궁궐, 종묘가 있습니다. 모두가 알다시피, 종묘는 조선왕조 역대 제왕과 왕비들의 혼을 모신 사당입니다. 도성이나 도시건축물 궁궐등이 삶을 영위하는 공간이라면 종묘는 영혼을 위한 공간 “신전”입니다. 조선왕조의 상징이자 서울의 정체성이라 할 수 있는 종묘에서 받은 정신적인 체험과 영적인 느낌을 그림을 통해 세상 사람들에게 전해주고 싶습니다. <